Life Stilled 90.9x60.6cm Oil on canvas 2021

나빈 작가노트

테이블 위에 두고 이렇게 저렇게 볼 수 있는 절화(折花)는 흥미롭다. 절화라는 꽃의 상태가 주는 서늘한 감각이 자꾸만 바라보게 한다. 일반적으로 자연의 경이로움은 멀리서 조망하는 풍광을 지칭하지만 절화는 테이블 위의 가까운 경이驚異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 저녁으로 달라지는 꽃의 모양과 색을 보며 숭고를 느끼는데 이는 그림의 배경으로 산, 호수, 바다 같은 모호하고 거대한 자연을 커튼처럼 드리우도록 이끈다.

 

모든 그림은 자화상이라는 맥락에서 나의 정물화는 내면의 어떤 부분들이 물질화된 것이다. 꽃이 주는 감각의 자극에 취해 그림은 시작한다. 그러나 긴 시간을 들여 물감을 쌓아올리는 동안 꽃이라는 형식을 빌어 자아가 외화外化 되는 경험을 한다. 꽃의 초상이 곧 자화상이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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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한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빈 개인전 Life stilled

 

김현주 (독립큐레이터)

 

설계된 세계는 이미 죽은 세계다

 

섭지코지를 두고 생각에 빠진다그곳 섭지코지 아닌 섭지코지가 여기 있다풍랑이 잠잠해진 해안이 지형 속으로부터 둥글게 밖으로 몸을 일으키고 있는 듯 봉긋하게 팽창하고 있다꽃과 자두백자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도드라지는 전시장에서 섭지코지로 운을 띄우는 건 풍경으로부터 그어진 선이 정물에 닿기 때문이다전시 제목 Life stilled에 예비한 정물화(Still Life)는 이미 눈으로 확인 가능하다그러나 나빈의 정물화는 정물화 고유의 사물의 질서를 회화에 재배열하기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포착된 대상과 내 감정 사이에 조리개를 조절하고 대상과 감정 사이의 농도를 결정하는 것이 그림의 큰 이유다영어로는 스틸 라이프(Still Life), 이탈리아어로는 나투라 모르타(Natura morta)라고 불리는 정물화는 사전적으로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이 없는 물건을 그린 회화를 의미한다그렇다면 나빈의 회화는 정물화의 정의에서 툭 떨어져 나온다정물화에서 떨어져 나온 Life stilled는 마가복음 속 예수가 파도를 향해 조용해져라잠잠해져라!(Quiet! Be still!)”는 구절에 이내 붙는다색을 쌓고 매만지면서 대상과 나 모두를 다스린 시간은 파도가 잠잠해지듯 산 시간이다섭지코지가 움트듯 나빈이 나빈이기 위해 벼린 시간이다.

 

우문일지 몰라도 나는 그녀가 대상에 다가가고 싶은 것인지 대상을 내게로 이끌고 싶은 것인지 물었다자두를 예로 들며 그녀는 나와 자두 사이를 오고 가는 시간에 대해 언급했다자두가 하나의 은유가 되고 자두를 빌어 나의 요소들을 드러낸다고 말한다일상의 나에서부터 화가로서 나에 대해서까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자신과 공명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대상을 보았을 때 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를 선뜻 던지기는 힘들다더 너른 선택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자두가백자가 나빈에게는 기교를 뽐내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적어도 작년 올해 맑은 눈으로 보고 찾은 이 시절 가장 간절한 가교(架橋)안으로부터 봉긋하게 부풀어 오르는 듯한 섭지코지로부터물오름이 충만해서 콕 찌르면 과즙이 산란할 것 같은 자두가본디 기물보다 둥근 양감으로 각을 누그러뜨린 백자 등은 많은 과제에 그 각각 수려한 해답을 마련하고자 자신을 종용했던 과거를 잠잠하게 다독이는 시간 속에 찾은 그녀가 그리고 싶은 것들이다자두와 백자가 오롯이 캔버스의 중심에 정물로 자리한다면 제주도에서 마주한 귤과 귤나무를 그린 그림은 정물과 풍경그리고 일 년여의 시차가 한 화면에 포개어져 있다따지 않고 남겨 놓은 익은 귤 하나와 그새 새로 익어가는 귤이 공존하는 귤나무는 관점에 따라 정물과 풍경 사이를 오간다농익음과 푸르름이 색과 질감에서 투닥거리는 듯하다그러나 나빈은 풍경과 정물을 회화의 범주 각각으로 놓지 않는다.

 

흔히 풍경이 저 멀리 보이는 세계를 넓게 아우른다면 정물은 가까이 들여다보며 집중하는 태도를 취한다그렇지만 나빈에게 근원(近圓)은 서로 대조를 이루는 쌍이 아니다오히려 멈까지의 그 사이를 조밀히 채우는 태도가 그녀에게 특별하다언젠가는 꼭 그리고 싶었다는 꽃그림이 여기 현시하지만 작은 체구의 그녀는 보이는 꽃보다 근접해 확대해서 그리는 꽃을 위해 온몸으로 화면과 싸워야 했다쌓여야만 나오는 물감의 발색을 위해 색과 요소를 계산하며 회차를 거듭하여 캔버스를 구성해내고 이 과정에서 가감하는 부분이 생긴다그녀는 자신의 회화가 과정이 잘 드러나는 그림은 아닌 것 같다고 아쉬워하지만 이만큼의 수고로움까진 헤아리지 못한다 해도 영롱한 회화가 전하는 나빈만의 고유함을 어떻게 범속하게 여길까투명도가 높은 물감을 얇게 덧칠하는 글레이징 기법을 주로 구사하는 그녀로서는 열 겹 이상의 레이어를 쌓아 올리는 유화의 절차가 고생스럽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 없다비효율적인 작업 방식을 고수하는 데에는 그녀가 찾은 투명 유화 물감의 레이어가 자아내는 빛감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반사로 인해 튕겨내는 빛뿐만 아니라 빛머금이 캔버스에 내려앉기까지 한 작품은 길게 일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나빈은 오랜 시간에 거쳐 만들어진 안료가 유화 물감이기에 옛 화가들과 같은 재료를 쓰고 있다는 즐거움에 기쁘다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백자를 그리면서도 조선 도공의 그날그날을 곱씹어 본다꽃과 화병이면 족할 꽃그림에도 꽃그림을 초상화나아가 자화상과 같이 여기며 풍경을 사소히 물리지 않는다.

 

이와 같은 나빈의 회화를 보며 현대미술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점하는 두 명의 작가를 떠올려본다그중 한 사람은 정물화가 조르주 모란디(Giorgio Morandi)그러나 이 순간만큼 정물화가 모란디가 아니라 풍경화를 그린 그의 작업을 생각한다모란디의 풍경화는 계절마다 변해가는 자연을 담기보다 풍경을 형태양감색감 자체만을 위해서도 관찰될 가치로 간주하였다나무건물을 그리나 나무건물의 디테일을 고스란히 전달하지 않는다산등성이에 있는 건물을 그렸다기보다 건물 그 자체가 아닌 입방체에 대한 탐구에 가까웠다그에게 풍경은 구성을 연구하는 수단으로 정물을 대하는 태도와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일치했다또 다른 사람으로는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가 있다그는 르네상스 고전 미술에 깊게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당대 라틴 문화에 대해서도 천착했다그의 회화는 풍만한 형태가 특징이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처리 과정에서도 리얼리티를 포기하지 않는다정물화풍경화인물화의 범주에 구애받지 않는 작가들을 떠올리면서 나빈의 회화를 다시 본다그녀는 자신의 회화가 회화이기 위해서는 조형적 변화가 더 좋은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20세기 영국 문학에서 실험적인 시도로 우뚝 선 존 파울즈(John Fowles)는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서 소설가의 소임에 대해 쓰고 있다. “우리는 실재하는(또는 실재했던세계만큼 사실적인그러나 그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창조하고 싶다.” 이 소설을 다시 들춘 이유는 영국 남서쪽 세찬 바람이 부는 코브 해안을 거니는 여성 주인공을 섭지코지로 인도하고 싶어서였다또한 내 작업에서 동시대성이란 무엇일까요” 묻는 나빈에게 전할 말이 있을까 고민에서부터다동시대적인 것이란 지각하는 모든 것과 관련해서 오직 위상차와 시대착오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라는 철학자의 말에서 시대착오(anachronism)라는 단어가 눈에 밟힌다한없이 멀리 동떨어진 곳에 당도한 것일까 두려움이 있을지언정 이 거리를 담담하게 내 위치로 삼고 오늘의 응수를 찾는 그녀는 적어도 죽은 세계에 있지 않다나빈에게 시원한 대답은 아니지만 오늘 작은 단서는 던지고 싶은 마음이 크다.



1)존 파울즈프랑스 중위의 여자김석희 옮김열린책들, 2011, p. 138.

2)“<우리는 실재하는(또는 실재했던세계만큼 사실적인그러나 그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창조하고 싶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미리 설계할 수 없는 까닭이다창조된 세계는 기계가 아니라 유기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또한 순수하게 창조된 세계는 그 창조자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설계된 세계그 형태와 구조를 평면도에 미리 드러낸 세계는 이미 죽은 세계다.” ibid.

3) Girogio Agamben, “What is the Contemporary?,” What is an Apparatus?, trans., David Kishik, Stefan Pedatell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9, p.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