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 물푸레나무 여름(ed.1/5) 60x105cm Pigment Print on Cotton Paper 2018

엄효용 작가노트

베란다 화분속나무와 가로수

 

1. 언제부터 나무에게 시선을 주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강원도 계곡에서 옮겨온 이름 모를 작은 나무,

초등학교 한쪽 켠,

딸아이와 앵두나무 아래에서 캐온 어린나무,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싹튼 후박나무,

집근처 나무시장에서 인연을 맺은 이런저런 나무,

그렇게 베란다가 나무 화분으로 가득할 무렵

화분 속에 갇혀있는 나무들이 애처롭게 다가온다.

 

2. 어느 날 목천IC를 지나는 길 유난히 동그란 형태를 가진 가로수에 시선이 간다.

거대한 츄파춥스를 땅에 꽂아둔 듯한 은행나무,

각설탕처럼 모양내어진 대학로의 버즘나무,

관광지로 변모시킨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신도시가 생기면서 이식된 가로수,

추운겨울 전지 작업된 버즘나무가 나에게 몸짓한다.

 

3. 강남의 어느 길을 지나 작업실을 향하는 출근길.

사고가 났는지 평소보다 체증이 심하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움직이지 않더니 조금씩 속도를 낸다.

수많은 각양각색의 가게와 건물들……

그리고 가로수로 심겨진 은행나무……

작업실에 가까워질수록 가게와 건물은 희미하게 사라지고

은행나무의 잔상만이 머릿속에 맴돈다.

 

4. 평범한 매일의 일상이

어느 순간 신비로 다가온다.

 

이 나무들을 기억하고 싶다.

수많은 나무들의 형상을

나의 기억대로

내 방식으로.


나는 베란다에 화분을 들이고

사람들은 도심에 가로수를 심는다.

 

그렇게 닮아있다.

베란다 화분속나무와 거리에 심겨진 가로수.



전시서문


각막을 간질거리는 시간의 자유유영 이미지

정훈 / 계명대학교 사진미디어과 교수

 

낯설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본다는 실존적 감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현전(現前)하는 실체보다 스마트폰이나 차량의 GPS처럼 외부기기에 의존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기억 또한 마찬가지다. 습관적 제스처 같은 무의지적 기억과는 별개로 시각적 이미지에 기반한 의지적 기억은 더 이상 신체가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셀피(selfie)나 제도화된 디지털아카이브 같은 탈-신체화된 정보 내러티브의 전자 신호적 신경망 속에 위치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포스트휴먼의 조건 속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기억한다. 점차 비물질적인 정보의 패턴만을 보고 기억하는 문화적 조건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엄효용의 사진은 이러한 기술적·문화적 환경 속에서 보는 이에게 정보 내러티브의 심연으로부터 실존적인 감각을 환기시키는 경험을 제공한다. 작업은 모호하게 보일 듯 사라지는 이미지의 배경공간으로부터 나무의 흐릿한 형상이 두드러지게 돌출되는 형상적 특징을 지니는데, 이는 백여 컷 이상의 사진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중첩된 결과로서, 각각의 사진에 부가된 도로·나무·계절의 명칭이 가리키듯이 어떠한 길 위의 풍경을 단일하지 않은 시간과 시점(視點)으로부터 촬영한 결과들을 하나의 사진적 공간 속에 퇴적시킨 것이다. 이를테면 일련의 사진은 특정한 시공간적 위상을 정의하는 단일한 소실점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의 자유유영이미지라고 일컬을 만한 것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본다는 시각적 확실성의 측면에서 그 어떤 것도 엄효용의 사진으로부터 포착할 수 없다. 무수하게 퇴적된 과다한 시각적 정보들은 마치 보는 이의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모호하게 상기되는 이미지-기억처럼 한 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무정형의 어렴풋한 잔상만을 불러일으킨다. 사진을 보는 이는 일련의 작업을 낱장의 사진으로 일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순간과 구체적 장소로 정의할 수 없는 이미지 공간의 특성으로 인해 그/그녀에게 사진 각각은 자연발생적이고 비자발적인 기억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환영의 공간으로 맴돌게 된다. 마치 주름진 피부의 표면으로부터 감지되는 시간의 내면처럼, 사진 위의 보일 듯 사라지는 형상의 흔적들은 우리의 각막을 간질거리면서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시간의 파장을 감지케 하고, 지속하는 시간의 내면으로부터 떠오르는 무엇인가를 사진을 통해서 바라보게 한다. 말하자면 엄효용의 사진적 공간은 바라보는 이에게 실존하는 자신의 기억을 찾아가는 자의식의 거울로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