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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에 물들인 공필 화조화

예부터 화조화(花鳥畵)는 날마다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세계와 인간이 생각하는 이상향을 모두 아우르는 회화 분야였다. 문인들에게 화조화는 산수화와 같이 마음의 도를 키우는데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이렇듯 전통적 맥락을 이어가며 현대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적인 그림을 통해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세련미를 보여주는 것이 나의 작품이다.

현대사회는 속도와 소비, 자본, 통신 이라는 키워드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화려함 속에 경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살다보면 때로 여백과 고요와 느림의 성찰을 잃어가며 공허함을 느끼고 외롭고 아프다. 그때 우리의 마음을 치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서정적인 감성이라 생각한다.

나는 비단에 먹 선을 긋고 무수히 반복되는 채색과정을 차분하게 한 단계씩 인내와 끈기로 색을 물들여 작품을 완성한다. 나의 작품에서의 먹 선은 단순히 스케치를 의미하는 선만은 아니다. 동양회화에서는 필력(筆力)을 가장 중요시 해왔다. 선 하나하나에도 이유가 분명하며, 수많은 연습으로 쌓여진 내공이 없다면 결코 표현할 수 없는 작업이다. 이렇게 선묘(線描)작업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채색에 들어간다. 비단작업은 매우 예민한 작업이기에 아교포수 과정 에서부터 많은 정성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여러 번의 실패와 실험의 연구 끝에 찾아낸 비율에 맞춰 교반수를 만들고 2번~3번의 포수 작업 후 분염(分染)부터 시작하여 조염(罩染)을 하는데 아주 맑고 담한 색을 수차례 쌓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림에 마음을 다 하는 것이다. 조금만 급하게 섣부른 채색을 하게 되면 조금씩 중첩되어 깊이감 있고 밝게 빛나는 색을 만들 수 없다. 때문에 끊임없는 고민과 생각 끝에 완성되어지는 붓질의 과정은 나의 이야기 이자 우리들의 이야기 이며 시간과 땀의 집적이다. 또,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한 방법과도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나의 작업방법은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가볍지 않은 진실 된 색이 우러나오듯 빠르고 화려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기에 적절함을 느낀다.

그대의 계절

꽃은 저마다 피는 시기와 계절이 있다. 그리고 각자가 가진 개성과 매력으로 아름다움을 뽐낸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인생도 꽃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우리들도 각자가 가진 아름다움이 있고, 피어나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인생 또한 꽃과 같이 피어나기 이전에는 한겨울의 추위도 견뎌야 할 것이며 비바람 부는 태풍도 이겨내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모습을 들어 낼 것이다. 꽃들이 그러하듯 우리들의 모습도 충분히 아름답다.